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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화풍 地水火風
2018년 9월 10일
In 언론 보도 媒体报道
원본 기사 출처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923378&plink=ORI&cooper=NAVER 2018.09.07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되던 1910년 3월 26일 형장 통역관으로 참여했던 소노키가 남긴 '사형시말보고서'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형 집행 후 뤼순감옥 교회실에서 예배를 마친 뒤 시신을 매장하기까지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에(의도적인 누락으로 생각합니다) 안 의사 유해 매장지를 특정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오전 10시 20분 교회실 특별 예배부터 매장을 마무리했다는 오후 1시까지 두 시간여의 공백은 그날의 유해 매장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핵심 퍼즐이었습니다. 안 의사가 순국할 당시 형무소장의 딸인 이마이 후사코가 이 기록의 공백을 채워주는 듯했습니다. 당시 8살이었던 후사코는 안 의사 사형 집행날 상황을 증언합니다. 사람들이 관을 메고 감옥 뒷문으로 나와 뒷산 묘지로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2장의 사진을 제공합니다. 1911년 뤼순감옥 뒤편 묘지에서 사형수 천도제를 지낸 뒤 찍은 사진인데, 안 의사의 매장 지점을 빨간 화살표로 표시해놨습니다. 후사코가 제공한 사진과 증언이 우리 정부의 2008년 유해발굴 조사의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사진의 지형과 당시 지도 등을 비교해 매장 추정지를 특정했습니다. 그 지역은 뤼순감옥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로 100m에 불과한 곳이었습니다. 유해 발굴단은 2008년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뤼순감옥 북문 뒤쪽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유해는 단 한 구도 발굴되지 않았고, 깨진 그릇 조각들만 발견됐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겠지만, 애초부터 희미한 어릴 적 기억과 사진 만으론 매장지를 특정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애써 발굴한 그 지역이 일본인 공동묘지라는 설도 있고, 1940년대에 뤼순감옥 묘지로 이용됐던 곳이라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1910년과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당시 뤼순감옥 서쪽엔 일본인 간수들 숙소가 있었습니다. 유해 발굴팀이 조사한 북문 뒤쪽 일대와 근접한 지역입니다. 이를 두고도 일제 입장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한 안 의사를 일본인 간수들 숙소 바로 옆에 묻었을까라는 상식적인 의문도 듭니다. 또 유해발굴 지역이 뤼순감옥과 너무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뤼순감옥에서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이 지역까지 걸어보니 불과 몇 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였습니다. 소노키 보고서에 적힌 교회실 특별예배부터 매장까지 걸린 두 시간여를 채우기엔 너무나 짧은 거리였습니다. 뤼순감옥 공동묘지라고 불렸던 지역은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둥산포' 즉 동쪽 산언덕이라고 불렀던 곳입니다. 뤼순감옥에서 동쪽으로 약 1.2km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지역은 1907년부터 1942년까지 뤼순감옥 공동묘지로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안 의사가 순국할 당시에도 뤼순감옥 공동묘지로 사용됐던 셈입니다. 다롄시도 2001년 이 곳에 뤼순감옥구지묘지, 즉 뤼순감옥 옛 묘지터라는 비석을 설치했습니다. 2003년 뤼순일러감옥 실록엔 시체를 이곳에 묻거나 일본여순의학학교 시체저장실로 옮겨져 해부시험용으로 제공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즉 둥산포 지역이 뤼순감옥 재소자들의 공동묘지로 이용됐다는 사실이 증언이나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얘깁니다. 지난주 둥산포 묘지 현장을 방문했을 땐 늦여름이라 나무가 우거져 묘지 일대 전체를 한 번에 조감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도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다 보면 뤼순감옥 옛 묘지터 비석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산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일반인들의 개인 묘지가 수두룩했습니다. 유해조사팀이 2008년 발굴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왜 엉뚱한 곳을 파고 있냐고 의아해했다는 증언도 있었다고 합니다. 발굴 당시 둥산포 묘지도 함께 조사했더라면 이런 아쉬움이 남지 않았을텐데라는 탄식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둥산포 묘지가 안 의사 매장지로 유력해 보입니다. 하지만 안 의사 유해찾기 전문가들은 '이곳이 매장지다' 혹은 '이곳이 확실하다'라는 표현을 매우 조심스러워합니다. 이 곳 역시 정황 증거일 뿐 객관적인 사료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입니다.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인 만큼, 매장지 사료 증거를 더 찾아서, 더 확실한 발굴을 진행해야 한다는 조심성의 표현으로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안 의사 유해를 의도적으로 숨기려고 했던 일제가 그냥 순순히 공동묘지에 매장했을까 하는 개인적인 의심도 들더군요. 이런 여러 이유 때문인지 전문가들은 둥산포 묘지를 유력한 매장 후보지 정도로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이젠 둥산포 묘지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설사 안 의사 유해가 묻힌 객관적 사료 증거가 추가로 발견되지 않더라도, 더 이상 둥산포 묘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안 의사 유해가 둥산포 묘지에 묻혀 있지 않다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지고 유해 발굴은 더 암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둥산포 묘지 지역은 문물 보호지역입니다. 중국 정부의 협조 없이는 발굴 조사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얘깁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발굴 실패 이후 확실한 문건 없이는 더 협조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남북한이 합의에 의한 정확한 유해 매장지점을 특정하면 협조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으로 좀 누그러졌습니다.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 측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면 북한과의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날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남북한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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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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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출처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923375&plink=ORI&cooper=NAVER 2018.09.06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뤼순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국권이 회복된 조국에 묻어달라'는 안 의사의 유언은 안타깝게도 108년이 지나도록 받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08년 뤼순감옥 뒷편 일대에서 유해발굴 조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 상태로 10년의 세월만 더 흘렀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어디에 묻혀 있는 걸까요? 지난주 안 의사 탄생 139주년을 맞아 뤼순감옥을 찾아가 안 의사의 마지막 흔적을 하나하나 되짚어봤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한 안 의사는 11월 3일 뤼순감옥에 수감됐습니다. 안 의사가 내린 뤼순역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안 의사는 순국 날까지 144일을 뤼순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수감 전부터 안 의사는 일제의 특별 경계 대상이었죠. 일제의 사형집행명령서엔 안 의사를 독방에 구금하고, 간수를 늘려 감시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담겨 있습니다. 법원에 출정할 때는 압송마차를 따로 준비해 외부에 노출되는 걸 차단했습니다. 심지어 안 의사에 대한 사형을 확정한 뒤 예정했던 사형집행일도 연기했습니다. 순종 황제의 생일인 3월 25일 사형을 집행할 경우 민족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만큼 일제는 안 의사의 죽음이 항일 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걸 두려워했다는 얘기입니다. 사형집행일인 3월 26일 상황은 비교적 상세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형집행에 참여했던 통역관 소노키 스에키가 남긴 '사형시말보고서'가 그것입니다. 오전 10시 안 의사는 '동양평화 만세' 삼창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고 2~3분간의 묵도만 올렸습니다. 10시 4분, 안 의사의 목에 올가미가 걸어졌고, 10시 15분 검시관이 절명을 확인했습니다. 10시 20분 안 의사의 시신은 침관에 안치돼 감옥 내 교회실로 운구됐습니다. 실제 뤼순감옥 사형실에서 교회실까지 가는 길을 걸어보니 불과 몇 분 거리였습니다. 교회실에선 안중근 의거 동지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를 불러 한국식 특별예배를 진행했고, 당일 오후 1시에 시신을 감옥서의 묘지에 매장했다고 소노키 보고서는 적고 있습니다. 소노키 보고서를 살펴보면 의아한 점이 생깁니다. 사형 집행될 때까지 과정은 상당히 자세하게 적혀 있지만, 정작 유해를 매장하는 과정은 생략됐습니다. 즉 유해가 교회실까지 옮겨질 때까지는 분 단위로 기록했지만, 교회실 특별예배 이후 과정은 아무런 기술도 없이 '감옥서의 묘지에 매장했다'는 결과만 남아 있습니다. 적어도 특별 예배가 끝난 뒤 매장을 끝냈다는 오후 1시까지, 약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이 생략된 셈입니다. 예배가 끝난 뒤 매장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건데, 개인적으론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느낌입니다. 유해를 운구하는 준비 과정이 오래 걸린 걸까요? 매장지까지 거리가 다소 먼 거리였을까요? 매장지에 도착한 뒤 매립하는 시간이 많이 걸린 걸까요? 분명한 건 일제가 일부러 이 부분을 누락했을 거란 의심이 강하게 듭니다. 일제는 애초부터 안 의사의 유해를 가족들에게 넘기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감옥법까지 어겨가며 안 의사 시신을 외부로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억지를 부렸던 거죠. 행여 안 의사의 유해가 항일 운동의 성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안 의사의 시신 매장 과정도 의도적으로 상술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결국 소노끼 보고서에서 남은 유해발굴 단서는 '감옥서의 묘지'만 남았습니다. 소노키 보고서 외에 안 의사의 사형집행 소식을 전한 당시 일본 매체들은 안 의사의 매장지를 '공동묘지', 뤼순감옥묘지', '감옥공동묘지'라고 표현했습니다. 결국 안 의사 유해발굴의 핵심은 '(뤼순)감옥(서) (공동)묘지'가 어디냐는 걸 찾는 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안 의사 유해 매장지 관련해선 도쿄 매장설, 이토 히로부미 무덤 옆 매장설, 하얼빈 공원 매장설, 수장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안 의사 유해발굴 과정 중단이 만들어낸 말 그대로 '썰'에 불과하다는 게 유해 발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각각의 설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섭니다. 때문에 일제가 남긴 문서에 근거한 뤼순감옥 공동묘지 매장, 당시 명칭으론 '관동도독부 감옥서 공동묘지'에 유해 발굴 조사를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100년이 지난 시간 동안 뤼순감옥 주변에도 묘지로 쓰였던 장소가 몇 군데가 있었고, 안중근 의사 유해 지점을 정확히 특정할 사료가 부족한 점이 안 의사의 유언을 받들지 못하고 있는 후손들을 애타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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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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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출처 https://m.entertain.naver.com/read?oid=438&aid=0000020697 2018.08.22 영화 <암살>과 <밀정>에 등장한 항일 열사 약산 김원봉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이몽>에 중국이 참여한다. 드라마 ‘이몽’(연출:윤상호) 제작사 이몽 스튜디오 문화전문회사 측은 “중국의 항주 쟈핑픽쳐스 유한공사가 ‘이몽’에 합작 투자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몽’은 일제강점기 경성과 만주 그리고 중국 상해를 배경으로 펼치는 첩보 멜로. 일본인에게 양육된 조선인 외과의사 이영진(이요원 분)과 독립투쟁의 최선봉이었던 비밀결사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유지태 분)이 상해임시정부 첩보요원이 되어 태평양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활약하는 블록버스터 시대극이다. 유지태는 남자주인공 ‘김원봉’ 역을 맡았다. 김원봉은 불 같은 가슴과 거침없는 행동력을 가진 의열단단장 ‘김원봉’ 역을, 이요원은 낮에는 외과의사, 밤에는 독립군 밀정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여인 ‘이영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칠 것을 예고했다. 이에 두 사람의 불꽃 같은 삶이 어떻게 그려질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모아진다. 그런 가운데 항주 쟈핑픽쳐스 유한공사의 투자는 최근 수년간 한국과 중국 사이의 합작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뤄진 결과라는 점으로 의미가 높다. 이에 항주 쟈핑픽쳐스 유한공사 우쟈핑 대표는 “드라마 ‘이몽’이 일제강점기 경성상해를 배경으로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그 내용이 완성도 있는 글로벌 기획이라고 확신해 작품 제작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몽’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맞아 기획된 글로벌 프로젝트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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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출처 https://mnews.joins.com/article/22889965#home 2018.08.16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안중근의 영웅적인 삶을 재조명하는 드라마가 제작된다. 16일 제작사 측은 “사전 제작돼 내년 방송을 목표로 하는 ‘영웅-푸른 영웅의 시대’는 도련님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안응칠이 독립투사 안중근으로 변모해가는 일대기를 극적으로 그려낼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안중근이지만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을 저격한 것은 개인적인 분노 때문이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자 특파대 대장으로서의 작전을 수행한 것이었다는 것까지 아는 사람은 잘 없다. 당시 일본은 대한의군으로서의 안중근의 신분을 일절 인정하지 않고 단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지닌 ‘의로운 지사’로, ‘개인적인 암살 행위’로 깎아내리려 했다. 그래서 드라마 ‘영웅’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안중근 의사라는 호칭에 이의를 제기하고, 대한의군특파대 대장으로서의 그의 삶을 재조명한다. 24부로 제작될 이 드라마는 총제작비 300억원 규모로, 한국·중국·북한 로케이션 촬영까지 진행하는· 대작이다. 타이틀롤인 안중근 역은 범아시아권 한류스타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드라마는 연말부터 사전 제작에 들어가 내년 방영될 예정이며 현재 이를 위해 하얼빈시를 비롯해 상하이, 베이징의 메이저 미디어 회사들과 한중 공동투자, 중국 내 촬영을 논의하고 있다. ‘영웅’의 연출은 드라마 ‘아이리스’(2009, KBS2), ‘크리미널 마인드’(2017, tvN)와 영화 ‘짱’(1998), ‘바람의 파이터’(2004), ‘그랑프리’(2010)를 만든 양윤호 감독이 맡는다. 안중근 기념사업회와 사단법인 항일독립운동가 단체연합회가 후원에 나서 고증의 질도 높아질 것으로 제작사 측은 기대했다. 제작사 아크378은 “향후 남북 간 공동으로 진행될 안중근 의사 관련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이후로도 잊힌 항일투쟁가를 찾아 드라마를 기획 개발하여 역사를 공유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며 “이번 드라마를 통해 남북과 해외동포들의 민족 정체성 정립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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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50422/70837995/1 2015.04.22 CCTV 자회사, 한국과 공동제작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의 자회사가 영화 ‘영웅 안중근’을 공동 제작하기로 하고 다음 달에는 전국을 돌며 출연진 오디션도 가질 예정이어서 중국에서 ‘안중근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나 드라마가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중국의 특성상 관영 언론사의 ‘영웅 안중근’ 제작 참여는 정부의 승인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과 과거사 문제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국과 공조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영화 제작사 ‘즐거운 상상’ 측은 21일 제작비 100억 원 규모의 한중 합작 영화 ‘영웅 안중근’에 CCTV의 자화사인 화런(華人)TV가 50억 원의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화런TV는 2억 명의 시청자를 보유한 중국 최대의 인터넷 방송사라고 제작사 측은 소개했다. 화런TV의 두청궁(都成功) 총재는 “1992년 뤼순(旅順) 감옥에서 안 의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여러 의미를 담은 서예 글씨를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으며, 그의 동양 평화에 대한 영웅적인 생애에 늘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안 의사는 중국과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다”며 “이번 영화 제작은 한국과 중국을 하나 되게 만들면서 중국 배급에서 엄청난 흥행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즐거운 상상’ 측은 “총재가 투자비 전액을 중국이 내겠다고 제안했지만 양국이 동등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감독의 뜻에 따라 50억 원 투자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한편 ‘영웅 안중근’에 중화권 톱스타 판빙빙(范빙빙)이 출연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 제작사 측은 그에게 시나리오를 보내 출연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설명했다. ‘즐거운 상상’ 측의 강성욱 PD는 “판빙빙이 출연하면 안 의사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哈爾濱)까지 오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었던 가상의 중국 여성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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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출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1/14/0200000000AKR20141114144800083.HTML?input=1179m 2014.11.14 한국과 중국이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 등의 삶을 소재로 식민제국주의에 저항했던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TV드라마를 공동제작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있다. 한국 방송통신위원회와 중국 국가신문출판총국은 1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1차 한중 방송정책 라운드 테이블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이후 방송교류협력을 구체화하기로 하고 TV드라마 공동제작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김재홍 방통위 상임위원이 14일 전했다. 방통위는 특히 이 자리에서 "한중 공동제작의 콘텐츠 소재는 두 나라 국민의 역사적, 문화적 동질감과 역사의식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 중국 혁명음악의 대부 정율성(鄭律成) 등을 구체적인 합작콘텐츠 소재로 제시했다. 중국 측은 이런 요청에 "검토해보겠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김 상임위원이 전했다. 방통위는 또 양국 자본과 방송 종사자들이 참여하는 합작 방식의 콘텐츠 전문업체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고 온라인 콘텐츠 저작권 보호를 위한 공조, 한국 콘텐츠의 방영 규제 완화 등도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은 콘텐츠 방영 규제 완화 요구 등에 대해서는 "관련 조치는 한국에 대해서만 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문화를 이해해달라"며 다소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의 이번 만남은 양국이 지난 1월 방송 콘텐츠 공동 제작 등 교류·협력을 한층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체결한 TV와 라디오 등 방송 분야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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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출처 http://star.mt.co.kr/stview.php?no=2010022315365990402&outlink=1&ref=http%3A%2F%2Fsearch.daum.net 2010.02.23 드라마 ‘동방의 빛’이 예정한 시기에 방송이 불가능한 상태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담은 '동방의 빛'은 안 의사가 순국한지 100주년이 되는 올해 3월26일을 기해 방송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직 촬영도 시작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방의 빛’의 제작을 추진중인 JI프로덕션은 올해 3월 방송을 예정으로 지난해 10월 촬영에 들어갔다고 밝혀왔다. 연기파배우 이성재가 안중근 역을, 신성일이 이토 히로부미 역을 맡는다고 꾸준히 언론에 알려왔다. 이들 외에도 양미경, 안재모, 박솔미, 이영아, 서지영, 임성민 등 유명 연기자들의 출연이 거론되며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존 보도와 달리 주인공을 맡은 이성재측은 “지난해 8월 출연계약을 한 후 촬영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방영일이 늦으면 내년까지 연기될 수 있다고 시사했다. JI프로덕션측은 23일 “사전제작을 계획했으나 아직 촬영에 들어가지는 못했다”며 “KBS, SBS 등과 접촉하며 편성을 위해 나름대로 일을 진행중”이라고 확인했다. KBS측은 "대하드라마 시간대에는 삼국시대 영웅 군주들 시리즈를 준비중으로 안중근 의사 관련 드라마는 기획 자체를 한 적이 없다"며 "'동방의 빛'은 방영을 검토해보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이 드라마를 기획, 집필해온 작가는 “자국의 독립이 왜 필요한지 왜 세계의 강국들이 조선이란 나라를 서로가 가지려고 욕심을 부렸는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그리고 고종의 이야기를 3각 구도로 전개한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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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출처 http://www.nocutnews.co.kr/news/4142157 2009.08.06 이성재, 신성일에 이어 이영아와 오승현 캐스팅… 오는 10월 첫 촬영 오는 2010년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맞이해 사전제작 하는 드라마 '동방의 빛'(가제, 제작 JI프로덕션)이 여주인공과 연출진을 확정했다. '동방의 빛'은 주인공 안중근 의사 역의 이성재와, 이토 히로부미 역의 신성일을 이미 낙점한 바 있으며 최근 이영아와 오승현을 캐스팅했다. 이영아는 안중근의 첫사랑이지만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내연녀로서 안중근의 독립운동 후원을 돕는 기녀 장연희 역을 맡았으며, 오승현은 명성왕후를 보필하는 최상궁의 조카 '닝닝' 역을 맡았다. 또, '동방의 빛' 연출은 이정표 감독이, 극본은 김연아 작가가 맡았다. 이정표 감독은 "드라마 '동방의 빛'이 역사적인 가치와 의의가 있는 만큼 기존의 인물 극에서 탈피, 보다 신선하고 흡입력 있는 드라마 제작에 혼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김연아 작가도 "3년의 집필 준비 과정을 거친 후 뜻을 함께 나눌 이정표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보다 생생하고 극적인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동방의 빛' 제작사측은 조만간 촬영지를 결정할 예정이며, 오는 10월 첫 촬영에 돌입해 2010년 24부작으로 방영될 예정이다. 한편, '동방의 빛'은 안중근 의사가 태어나면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1세 ~32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재구성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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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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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출처 http://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66086589784696&mediaCodeNo=258 2009.08.06 2010년 안중근 서거 100주년 기념으로 제작되는 드라마 ‘동방의 빛’(가제·제작 JI프로덕션)에 신성일을 비롯해 천호진, 안재모, 이일화 유지인 등 실력파 배우들의 출연이 확정되었다. 신성일은 안중근 의사의 저격에 목숨을 잃는 이토 히로부미 역을 맡았고 천호진은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으로 분할 예정이다. 안재모는 허구의 인물인 서우로 캐스팅 되었으며 이일화, 유지인,이영하 등이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에 참여하게 됐다. 주인공인 안중근 의사 역에는 이성재가 낙점되었으며 이영아는 안중근의 첫사랑이지만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한 채 독립운동 후원을 돕는 기녀 장연희 역을 맡아 극을 이끌어간다. 제작사인 JI프로덕션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 초기의 역사적 사실과 안중근을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생생히 담아낼 것”이라며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역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면은 중국 하얼빈시의 전폭적인 협조로 현지에서 촬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 ‘동방의 빛’은 오는 10월 촬영에 들어가 내년에 방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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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화풍 地水火風
2018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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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출처 http://www.media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65681 2009.05.13 안중근 의사 "독립 투지" 드라마로 부활  24부작 "동방의 빛" 제작 독립투사 안중근의 일대기를 담은 드라마 "동방의 빛"(가제)이 사전 제작된다. 제작사 JI프로덕션 측은 "100년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 사상과 이념을 담아낼 예정"이라며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교육적이면서도 역사적 보존의 가치가 높은 기록으로 남기고자 제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방의 빛"은 주인공 독립투사 안중근 의사의 굴곡지고 애절한 삶의 이야기를 24부작으로 그려낸다. 김연아 작가는 "안중근 의사가 태어나면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며 "역사적 사실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재구성, 논픽션을 가미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방의 빛"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0월26일 의거일에 맞춰 올해 가을 제작에 돌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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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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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출처 https://entertain.v.daum.net/v/20090512105604996?f=o 2009.05.12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일대기를 담은 드라마가 나온다.JI프로덕션은 12일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아 24부작 드라마 '동방의 빛'을 제작한다"며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0월26일 의거일에 맞춰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동방의 빛'은 안중근 의사의 굴곡지고 애절한 삶을 그린다. 2006년부터 드라마를 준비해온 작가 김연아씨는 "안중근 의사가 태어나면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1~32세 때의 이야기를 다룬다"며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재구성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윤현묵 JI프로덕션 대표는 "100년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 사상과 이념을 담는다"며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로부터 촬영장에 관한 전폭적인 지원도 받을 것"이라고 알렸다. JI프로덕션은 2004년 SBS TV가 방송한 드라마 '토지'의 제작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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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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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출처 http://www.dailian.co.kr/news/view/82332 2007.09.26 기차를 탄 지 10시간 정도 지났을까. 탐방단의 객실을 담당하던 승무원이 하차를 준비하라는 말을 전했다. 단원들은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서둘러 각자의 짐을 챙겼다. 7월 17일 오전 7시 40분경. 탐방단은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역사의 현장인 하얼빈 역에 발을 내딛었다. 하얼빈 역은 흐린 날씨 때문인지 탐방단의 무거운 마음 탓인지 모르지만 어두운 분위기였다. 1909년 10월 22일 하얼빈에 도착한 안 의사는 26일 오전 7시경 하얼빈 역에 도착, 플랫폼을 관찰할 수 있는 역사 내 찻집으로 들어가 동정을 살핀다. 안 의사가 바라본 하얼빈 역사 안팎은 러시아 군인들과 출영객 등이 가득차 혼잡했다. 이토가 탑승한 열차가 오기만을 기다린 지 2시간여. 오전 9시경 드디어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일본 추밀원 의장을 태운 특별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한다. 이토를 마중 나온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 일행이 열차 안으로 들어가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그와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토와 수행원들이 기차에서 내린다. 이토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안 의사는 이토가 정확히 누구인지 모른 채 “이 거사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꼭 성공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찻집에서 나온다. 전날 일본 총영사가 러시아 군인들에게 통제를 하지 말라고 협조를 구한 탓에 안 의사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토 일행에게 다가간다. 이토로 추정되는 인물은 코코프체프의 안내를 받으며 의장대를 사열한 뒤 외국영사단 앞으로 가 출영객들로부터 인사를 받기 시작한다. 안 의사는 러시아 군대 뒤에서 이토로 추정되는 인물이 자신의 앞을 지나가길 기다린다. 그가 안 의사 앞을 지나가던 찰나, 안 의사가 품속에서 꺼내든 벨기에제 ‘브로우닝’식 권총은 그를 향해 3차례 불을 뿜었고, 그는 뭐라 몇 마디 중얼거린 뒤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안 의사는 총에 맞은 사람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위가 높아 보이는 일본인 인사들을 향해 4차례 더 총을 쏜다. 그 총에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 등 3명이 더 쓰러진다. 이때가 오전 9시 30분경이다. 안 의사는 이토의 저격 직후 몰려드는 러시아 헌병들 힘에 밀려 넘어진다. 총도 떨어뜨린다. 그러나 안 의사는 곧장 일어나 그 자리에 서서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세 차례 외친 뒤 달려드는 러시아 헌병에게 순순히 붙잡힌다. 탐방단은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줄지어 이동했다. 5분 정도를 걸었을까. 조선족 출신인 가이드는 탐방단을 플랫폼 한켠에 멈춰서게 했다. 줄지어 오다 보니 한 곳에 뭉쳐 서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둥글게 모인 탐방단은 가이드의 입만 멀뚱멀뚱 바라봤다. 플랫폼 주위를 둘러봐도 그곳에 멈춰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다른 곳과 똑같은 플랫폼이었다. 특이한 게 있다면 바닥에 타일로 세모와 네모 모양이 7~8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표시돼 있다는 점 뿐이었다. 이윽고 가이드가 말문을 열었다. “이 곳이 안 의사님께서 민족의 원흉 이토를 사살한 역사적 현장입니다”라고. 단원들은 가이드의 말이 떨어지자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뭐야, 여기가 안 의사님 의거 장소라고?”, “뭐 이래.” 탐방단 여기저기서 너무나 초라한 안 의사 의거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가이드는 “세모 모양이 있는 곳은 안 의사 총으로 이토를 저격한 지점이고, 네모 모양은 안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가 쓰러진 곳”이라면서 “이 표시도 작년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가이드는 뒤를 돌아 대각선으로 20여미터 떨어져 있는 역사가 안 의사가 이토를 기다렸던 찻집이 있던 곳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탐방단의 양금지(21세, 성균관대 국문학과 2년)양은 “우리나라에서 ‘하얼빈역’ 하면 안 의사를 떠올리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중국 사람들은 안내간판 하나 없을 정도로 안 의사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것 같다”며 “나라의 위상이 많이 올라간 지금도 하얼빈 역에서 우리가 초라한 기분이 드는데, 식민지 치하에서 단신으로 이곳에 왔던 안 의사는 얼마나 더 초라함을 느꼈을까 생각이 든다”고 울분을 토했다. 탐방단은 제대로 된 안내판 하나없는 역사적 현장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으로 안 의사께 감사함과 미안함이 뒤섞인 묵념을 올렸다. 탐방단은 묵념을 마친 뒤 안 의사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을 간직한 채 하얼빈 역을 빠져나왔다. 하얼빈 역을 빠져나오는 내내 그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하얼빈역 광장은 중국의 10대 도시 중 하나라는 하얼빈시의 명성에 걸맞게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광장은 어디론가 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들어가는 사람, 출구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단원들은 행여나 많은 인파로 인해 대열을 놓칠까 걸음을 재촉했다. 30여명의 탐방단 전체가 출구를 빠져 나오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탓에 허기를 느낀 탐방단은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뒤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후 수감됐던 일본 총영사관 터를 찾았다. 러시아 헌병대에 체포된 안 의사는 거사 당일 밤 11시경 일본 총영사관으로 이송된다. 당시 하얼빈시의 관할권을 갖고 있었던 러시아가 일본과의 마찰을 우려, 안 의사를 일본 당국에 넘긴 것이다. 안 의사는 일본 총영사관으로 이송돼 11월 1일까지 6박 7일간 취조를 받는다. 안 의사가 취조를 받았던 일본 총영사관 터엔 이제는 소학교(초등학교)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건물 벽면 한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붙여진 표지가 안 의사가 머물렀던 흔적을 대신하고 있었다. 총영사관 터가 도심에 위치하고 있는 탓에 탐방단은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전에 서둘러 자리를 떠야만 했다. 탐방단이 이어 들린 곳은 안 의사가 하얼빈역 의거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검토했던 장소인 제홍교. 하얼빈역에서 불과 200~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제홍교는 안 의사가 거사 하루 전인 25일 이곳에 서서 최종 거사위치를 확인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제홍교에 서자 하얼빈역 플랫폼이 한 눈에 들어왔다. 현지 가이드는 "제홍교는 안 의사가 이토를 사살한 후인 1926년 새로 건설돼 예전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며 "하지만 안 의사가 하얼빈 역을 바라봤던 그 위치 그대로에 설치돼 있어 지금 바라보는 하얼빈역의 전경은 안 의사가 봤던 것과 똑같다"고 소개했다. 문득 ‘안 의사가 하얼빈 역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스쳐지나갔다. 아마도 이토 저격이라는 민족적 거사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불꽃같은 의지를 다짐과 동시에 떠나온 조국의 산천과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얼빈역 감상을 마친 뒤 탐방단은 안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거닐었다는 하얼빈 공원(현 자오린 공원)을 둘러봤다. 그나마 하얼빈 공원은 안 의사의 체취를 느낄 수 있도록 공원 한켠에 ‘청초당(靑草塘)’과 ‘연지(硯池)’라고 안 의사가 옥중에서 쓴 글을 새긴 유묵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마저도 지난해 들어섰다고 한다. 안 의사는 하얼빈 공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듯 했다. 안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사형집행 직전 두 동생들(정근·공근)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쟁해달라”는 최후의 유언을 남길 정도. 그러나 안 의사의 바람과는 달리 안 의사의 유해는 사형집행 후 하얼빈 공원에 묻히기는커녕 조국의 국권이 회복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에 묻혀있는지 조차 확인되지 못하고 있다. 탐방단은 또 한 번 안 의사께 죄송함의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다. 언젠간 안 의사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가겠다고. 이후 탐방단은 조선민족예술관과 고려회관 내에 있는 안의사 기념관을 탐방했다. 특히 2004년 중국에서 최초로 안의사 기념관을 개관한 이후 2만여명이 관람한 고려회관엔 서울 구로구에서 후원회 만든 안 의사 동상이 놓여있었다. 조선족 출신인 고려회관의 한 관계자는 “우리들이 안 의사의 동상을 바깥에 세우려고 30년전부터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회관 내에 설치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중국 당국이 일본의 항의 등을 우려해 안 의사 동상을 외부에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난 해 3월 한국의 한 기업가가 안 의사 동상을 거리에 세우자 보름도 채 안 돼 중국 당국으로부터 철거 조치를 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세계 로봇학회 부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홍만용 (하얼빈 공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비록 안 의사 동상이 바깥에 당당히 설치돼 있지 못하지만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하얼빈에 와 이곳에 있는 동상을 보고 아직도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는 일본 등의 국제정세 상황 속에서 안 의사의 인본주의와 국제주의 사상이 퍼져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드라마 ‘주몽’을 보면서 중국 교포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안중근’ 드라마를 하얼빈에서 찍어 세계가 시청하고 젊은 세대들이 안 의사를 알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얼빈 시에서의 첫날 탐방 일정을 마무리한 탐방단은 숙소인 흑룡강대 기숙사로 향했다. 탐방단은 재중교포인 김우종(78세) 전 흑룡강성 당 역사연구소장 등으로부터 안 의사의 사상과 의거 현장에 대한 고증을 들을 수 있었다. 김 전 소장은 특히 중국 내에서 동상 건립 등 안 의사 기념사업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 “안 의사 기념사업을 주도적으로 벌이는 곳이 남한이기 때문에 안 의사의 본적지인 북한에서 중국 당국에 항의를 하는 것도 일정 부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다음날인 18일. 서둘러 아침을 먹은 탐방단은 하얼빈에서 2시간여 거리에 있는 채가구(蔡家溝, 차이자거우)역을 방문했다. 안 의사는 독립운동가 우덕순 조도선과 함께 신문 등으로 정보를 수집해 거사를 논의하던 도중 일본의 남만주 철도와 러시아의 동청 철도가 엇갈리는 채가구 역에서 이토가 열차를 갈아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때문에 안 의사는 채가구 역을 1차 의거지로 정하고 우덕순과 조도선이 담당토록 하고, 하얼빈역을 2차 의거지로 해 안 의사가 의거를 진행키로 결정한다. 우덕순과 조도선은 결국 거사 직전 적발돼 채가구역 지하실 방에 갇히게 되고, 안 의사는 거사에 성공한다. 탐방단이 한참을 헤매다 찾은 채가구 역은 이젠 열차도 제대로 서지 않는 간이역이 된 상태였다. 그래선지 채가구 역 대합실로 들어서는 입구는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우덕순과 조도선이 갇혔던 채가구 역 지하실은 역사적 유적지라고 보기엔 너무나 안타까울 정도로 거미줄과 쓰레기 더미로 가득했다. 지하실 입구가 쓰레기 더미 등으로 인해 너무 비좁은 탓에 탐방단 전체가 들어가 보진 못하고, 일부가 거미줄과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들어가 쪼그려 앉아 사진 몇 장을 찍어오는 데 만족해야 했다. 탐방단 속에선 “여기가 쓰레기장이지, 유적지야”라는 말이 나돌았다. 채가구 역을 떠나온 탐방단은 일본 제국주의의 잔악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731부대를 찾았다. 하얀 꽃가루가 날리고 있는 731부대의 전경은 고통 속에 신음하며 죽어간 많은 이들의 넋이 서린 듯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전시실에 들어선 탐방단은 생체실험을 하는 참혹한 장면과 생체실험 도구들을 보며 기겁을 했다. 탐방단은 “생체실험을 주도한 731부대 지도부들은 미군에 모든 생체실험 결과를 넘기는 조건으로 전범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는 현지 가이드의 말에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전시가 끝나는 지점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있었다. 1939년부터 1945년 사이 세균실험 희생자 3000인이라는 동판은 코끝을 찡하게 했다. 이 같은 생체 실험을 통해 죽어간 우리 선조들은 얼마나 많을까. 음산한 분위기의 731부대를 나와 탐방단은 한족 출신으로 안중근숭모회 하얼빈 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현운(52세) 사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장 사장은 “안 의사는 세계적인 영웅이다. 어려운 상황에 이토를 격살한 용기와 담대함은 한국인 뿐 아니라 중국인 나아가 세계의 모든 사람이 기념할 바”라고 말해 탐방단을 감동케 했다. 저녁을 마친 탐방단은 안 의사가 감옥에서 수감되고 재판을 받은 여순(旅順, 뤼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단동(丹東, 단둥)으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탐방단은 안 의사가 하얼빈에서 여순으로 이송되면서 거쳐 갔던 기찻길을 그대로 따라 갔다. 안 의사의 기억을 더듬은 지 12시간 남짓. 여순이 속해 있는 대련으로 직행했던 안 의사와는 달리 압록강과 호산장성을 둘러보기 위해 탐방단은 단동에서 하차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해 있는 단동시는 개발붐에 탓에 상당히 발전된 모습이었다. 압록강 건너 북한 지역의 신의주와는 완연히 달랐다. 단동과 신의주는 압록강 철교로 이어져 있었다. 탐방단이 철교를 구경하는 동안에 신의주와 단동을 오가는 차량들이 들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압록강 철교를 구경한 탐방단은 점심을 먹은 뒤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의 전쟁에 대비해 세운 박작산성에 올랐다. 그러나 박작산성은 이미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호산장성으로 바뀐지 오래다. 중국은 이 성을 만리장성의 동단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안내판이며 큰 건물 모두에 호산장성이라는 간판을 붙여놓았다. 성을 걸어오른 탐방단은 우리 조상인 고구려인들의 위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압록강변에 위치해 있는 데다 험한 산성 지형에, 산성 정상에선 수십 킬로미터까지의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야말로 요새다운 곳이었다. 산성 주변은 10보도 채 안 되는 실개천을 사이에 놓고 중국과 북한의 국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북한 들녘엔 한가로이 자전거를 몰고 가는 한 사람을 제외하곤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다. 박작산성을 오르는 것으로 단동 일정을 마친 탐방단은 단동에서 4시간가량 거리에 있는 대련으로 향했다. 대련시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안 의사의 마지막 혼을 볼 수 있는 여순이 있다. 중국 요녕성(遼寧省, 랴오닝성) 요동(遼東, 랴오둥) 반도 남단부에 위치해 있는 군항도시인 여순은 안 의사가 수감돼 재판을 받았던 감옥과 법원이 있는 곳이다. 대련시에 도착해 저녁을 먹은 탐방단은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탐방단의 중국 탐방 마지막 날인 20일 아침. 탐방단은 여순 법원을 방문했다. 안 의사가 재판을 받은 여순법원은 중국 당국이 병원에 매각하려던 것을 한국의 한 재단이 매입,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안 의사는 여순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강압적인 일본 재판부 앞에서 단 한 번도 기개를 잃지 않고 심판관을 심판할 정도로 당당히 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안 의사는 공판에서 이토를 총살한 이유에 대해 “이번 거사는 나 개인을 위해 한 것이 아니고,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한 것”이라고 진술한다. 안 의사가 검찰 조사과정에서 서면으로 제출한 ‘이등의 죄악 15개조’를 거듭 강조한 것. 하나,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요 둘, 한국의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요 셋, 을사보호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요 넷, 독립을 요구하는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요 다섯, 정권을 강제로 빼앗아 통감정치 체제로 바꾼 죄요 여섯, 철도·광산·산림과 농지를 강제로 빼앗은 죄요 일곱, 일본의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여 한국의 경제를 교란한 죄요 여덟, 한국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요 아홉, 민족교육을 방해한 죄요 열, 한국인들의 외국유학을 금지시키고 식민지화한 죄요 열하나, 한국사를 말살하기 위해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버린 죄요 열둘,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요 열셋,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엔 전쟁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무사태평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요 열넷, 대륙침략으로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요 열다섯, 일본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다 일본 재판부의 안 의사에 대한 재판은 일본 정부의 강압 때문에 형식적으로 끝난다. 신문과 변호, 구형 등이 일주일 안에 모두 종료될 정도였으니,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 짐작된다. 안 의사는 선고공판 때 사형이 언도되자 “일본에 사형 이상의 형벌은 없느냐”며 미소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곤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상고도 포기한 채 담대히 사형집행에 응한다. 탐방단이 방문한 여순 법원엔 당시 사용됐던 법정 도구들이 전시돼 있었다. 하지만 안 의사에 대한 영상물 전시를 제외하곤 안 의사는 중국의 항일 독립운동가들과 동일한 수준에서 소개되고 있었다. 법원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안 의사만을 위한 전시관을 하려고 했지만, 중국 당국에서 중국인 항일운동가와 함께 (전시)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지금도 중국 당국에서 감독이 심하다”고 밝혔다. 탐방단은 여순법원을 둘러본 뒤 안 의사가 수감생활을 한 여순 감옥으로 향했다. 여순 감옥은 중국 당국이 감옥을 그대로 보존해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감옥 본관동의 좁은 감방에는 당시 수감자들이 사용했던 식기, 짚신 등이 놓여 있었고, 감방동 한쪽에는 형틀, 수갑, 몽둥이 등 당시 고문에 사용됐던 도구들이 일제의 만행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안 의사가 수감됐던 방은 본관동 밖 간수부장 당직실 바로 옆에 마련된 독방. 벽에는 안 의사의 사진과 함께 중국어와 영어, 한국어, 일본어로 안 의사에 대한 설명을 해 놓았다. 감방 내부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조그만 방에는 안 의사가 사용했던 필기구와 책상, 침구 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안 의사가 사형 집행을 당한 곳은 다른 일반 사형수들이 교수형을 당한 곳이 아니었다. 안 의사만을 위해 별도의 공간에서 사형을 집행했다고 한다. 탐방단이 방문한 안 의사의 교수형장은 안 의사만을 위한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기념관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안 의사의 흉상과 교수형에 이용된 밧줄, 화분 등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탐방단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불꽃같은 삶을 살고 간 안 의사께 머리를 숙여 묵념했다. 안 의사의 흉상은 탐방단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탐방단은 여순감옥 탐방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대련항에서 인천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30여명의 탐방단은 그간 안 의사가 행동으로 가르친 조국에 대한 사랑을 가슴 속 깊이 새긴 듯 했다. 탐방단의 기장을 맡았던 윤석범(25세, 건양대 공연의상과 3년)군은 "10박 11일간 안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면서 안 의사의 조국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며 "앞으로 안 의사의 가르침을 가슴깊이 새겨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으로 향하던 날밤. 선상에서 맞는 바람엔 안 의사가 거사 전 지은 자작시가 들려왔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에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응시함이여 어느날에 업을 이룰고. 동풍이 점점 차가우나 장사에 뜻이 뜨겁다. 분주히 한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도적 이등이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고. 어찌 이에 이를 줄을 헤아렸으리오 사세가 고연하도다.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세여 대한동포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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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화풍 地水火風
공동 작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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